2월 2017

사랑의 편지 2월 26일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이론 시험과 실기 시험을 치루어야 합니다. 이론 시험은 도로 주행에 대한 이해입니다. 실기 시험은 자동차의 움직임에 대한 기술입니다.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에서 운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론만 안다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자동차 운전만 할 줄 안다고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의 표지판과 신호등과 안전운행 수칙 등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나고 자동차가 부서질 뿐만 아니라 사람이 다치게 되고 건물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면허를 취득했다고 해서 운전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숙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운전대를 잡고서 발로 엑셀레이터를 밟고 브레이크를 밟고 또 동시에 옆 면의 사이드미러를 보는 것이 어렵습니다. 옆에서 차가 막 달리는데 차선을 바꾸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숙달이 되고 나면 모든 것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 모든 것이 실제 운전을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삶도 비슷합니다. 단지 성경의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닫고 결단한 말씀의 내용들을 삶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훈련과 성경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엇박자가 계속 나겠지만 지속적인 경건의 훈련과정을 통해서 신앙은 생활 속에 삶 속에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게 됩니다.

이제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시작이 됩니다.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영적 성숙이 깊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의 편지 2월 19일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인간의 욕망이 가고자 하는 길과는 정반대로 향한다.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인데 십자가의 길은 죽기까지 복종하게 하고 내려가게 한다.

인간은 살고자 하지만 주님은 죽고자 하신다. 인간은 채우고자 하지만 주님은 비우고자 하신다. 인간은 받고자 하지만 주님은 주고자 하신다. 주님은 섬기러 오셨고 인간은 섬김을 받기를 원한다.

살면서 인간처럼 모순된 존재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비판적인 것이 인간이다. 자신의 삶의 부족은 못견디지만 다른 사람의 삶의 부족은 못본체 한다.

스스로 의로운체 하지만 스스로 악을 행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모순을 안고 살아간다. 심지어 우리의 섬김과 봉사와 겸손 속에도 이중적 모순이 존재할 때가 많이 있다. 섬기면서도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 한다. 마치 마르다와 같이… 또 반면에 다른 사람의 섬김을 보면서도 자신은 섬기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주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까? 그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라고 하는데…

결국 그 십자가에 나의 정욕과 욕망을 못박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우리의 정욕과 욕망이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주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그 구원의 능력과 역사는 우리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철저하게 그리고 계속해서 십자가에 우리의 정욕과 욕망이 못박히는 과정을, 죽어가는 과정을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살고자 하면 죽게 된다. 그러나 죽고자 하면 살게 된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계속해서 배우게 된다.

주님의 십자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다.

사랑의 편지 2월 12일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준비를 아무리 잘 해놓아도 막상 실제로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준비한 것이 별로 쓸모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그래도 평소에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준비는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당할 때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내가 준비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준비를 잘하는 경우에는 나의 기대나 예측을 넘어서는 결과들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내가 당한 어려움에 평소에 준비한 일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건강 관리를 잘 하지만 예기치 못한 큰 병에 걸릴 수 있고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황하고 막다른 골목길에 들어선 듯이 먹먹해 집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해야 하듯이 일반적인 논리와 합리적인 생각들이 통하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인 논리와 합리적인 생각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고 혼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생각과 논리와 합리성을 뛰어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서 그리고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논리를 뛰어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 자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칙이나 논리를 뛰어 넘은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죄 아래 살아가는 인간의 생각과 논리를 넘어서 있는 하늘의 관점입니다.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라고 했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고도 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라는 진리는 여전히 우리들의 믿음을 테스트 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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