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6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주일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음 앞에 가장 무능력한 인간에게 부활은 최고의 소망이며 능력입니다. 환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 죽지 않는 불사조의 능력과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능력을 인간이 가장 동경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죽지 않음과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의 한계와 모순, 죄악이 가득 찬 세상에서 인간이 단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과학과 의술의 발달은 인간의 수명을 계속해서 연장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획기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큼 노령화되는 사회에서 인간에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나타납니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감이 허무하기에 스스로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하고자 하는 안락사의 문제가 제기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의미가 없는 삶은 인간을 더욱 괴롭게 만들고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단지 다시 살았다는 의미만은 절대 아닙니다. 죄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뜻입니다. 죄가 더 이상 다시 살아난 생명의 삶을 주장하지 못하고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삶에 나타난 모든 문제는 다 죄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죄의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죽음도 죄의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뜻은 죄의 권세가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들의 주님과 그리스도(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은 그와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의 삶, 죄가 주장하지 못하는 참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주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

밭을 가는 소를 몰고 가는 농부가 앞에 보이는 목표지점이 없이 몰고 가면 소는 갈팡질팡하면서 밭고랑이 똑바르지 못하고 삐뚤삐뚤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후보 공천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치적 보복과 자신의 정치적 이권을 향한 첨예한 대립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정치적 절충안(타협)을 통해서 최대한 이익을 많이 챙기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길들은 갈팡질팡하면서 걸어간 삐뚤어진 길과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이와 같았습니다.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위하여 이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항상 가장 좋은 절충점들을 찾아서 타협했습니다.

그 때 등장한 예수님은 이들에게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은 자신들의 가슴을 찔렀고 회개의 자리로 가지 않는 그들은 결국 그 말씀을 배척하고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 결정에 평소에는 적대적이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하나가 되고, 빌라도와 헤롯이 하나가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문제들을 총독에게 가져가서 정치적인 문제로 바꾸어 버립니다. 모두가 자신의 손익 계산에 몰두해 있을 때 그 사건의 가장 중심에 계신 주님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썩고 죽어 많은 열매를 맺고자 오직 십자가를 향하여 대속의 제물로서 가고 계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종려주일은 주님이 예루살렘 성에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날입니다. 동시에 오직 한 길,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길을…

모순과 헛됨

미국의 대선후보선출을 위한 예비선거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한국에서는 총선을 위한 후보자 선정이 진행 중입니다. 후보들은 선거의 공약을 내어놓습니다. 자신은 어떤 정책을 펼치고 싶고 지역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 정치 속에서 들어가면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는 공약이 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여건이 맞지 않아서 못지키기도 하고 처음했던 말을 바꾸어서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들이 모순되고 헛될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마음으로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이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신앙고백은 마음과 입술의 진실됨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고백도 헛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신앙을 고백한 대로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면서 모순을 느끼고 그 현실 앞에 직면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하신대로 살아가셨고 그 말씀하신대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셨고 죽으셨고 살아나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하나도 헛되이 돌아감이 없고 온전히 다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모순된 삶 속에서 우리는 우리 각 자의 인생의 헛됨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완전한 성취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십자가에 나의 정과 욕심이 못박히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가 답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놓치고 읽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성경을많이 읽는다든지 혹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다른관점에서 성경을 읽게 되면 우리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이 없어서 방향을 잃고서 표류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항해를 하는 것과표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그것처럼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면 성경의 바다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요한복음5장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거는 곧 그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사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고난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主)요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죄가 죽는 자리이며 의가 살아나는 자리입니다. 우리모두는 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들입니다.우리들의 삶은 이 십자가의 삶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입니다.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은 우리들이 지금 어떤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인생의 바다에서표류하지 않고 항해하여 천국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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