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16

사순절에는…

사순절 세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킵니다. 40일은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적 의미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고 기도하신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생활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삶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삶도 광야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 곳입니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랄 수 없는 메마른 곳이며 척박한 환경입니다. 그 광야에서 40일을 지낸다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그래서 마귀는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에게 시험을 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40일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생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을 마음에 새김과 동시에 예수님의 삶의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사셨듯이 우리들의 삶도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줄 깨닫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우리의 삶을 절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시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가장 복된 시간이 됩니다. 이 시간을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주님은 광야에서 금식하셨지만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들의 사순절도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며 시험을 물리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그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삼일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셔서 죄인들의 구세주(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사명은 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주(하나님)요 구원자(그리스도)라고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이라는 교회 절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모든 죄인들이 당하는 고통과 묶여 있는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대속의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 속에서 우리의 고통과 죽음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예수님이 죽으신 십자가에서 나도 죽었고 주님이 다시 살아나실 때 나도 다시 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까? 죄에 대하여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곧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되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주(하나님), 그리스도(구원자)가 되심을 믿고 그 안에서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오늘도 나의 사건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이 문장은 세익스피어의 ‘햄릿, 제3막 제1장’에 나오는 독백입니다. 세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죄와 더불어 죽기까지 싸우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죄와 타협하면서 이 생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이 맞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항상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생을 택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썩어 많은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결국 인생은 생과 사의 문제이며 생은 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이라는 영광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삶과 죽음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생을 택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생(삶)은 오직 사(죽음)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그래서 고난은 신비이며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은 왜 우리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며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는 말씀을 주님이 왜 하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부활의 영광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가 되는 신비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대 로마시대의 십자가는 죄인들을 달아 죽이는 사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라는 이미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죄인이 달려 죽는 형틀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죽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대신 값을 지불한다는 뜻입니다. 정작 자기의 죄를 지고 십자가라는 죽음의 형틀에 달려 죽어야 하는 죄인들을 위해서 주님은 대신 십자가에서 그 죄를 담당하시고 죽은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에 대한 성경의 증언들은 ‘주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있는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십자가라는 죽음의 형틀에 달려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십자가의 의미와 그 은혜와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마음 속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2월 10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십자가를 묵상하며 보내려고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 신앙의 핵심이며 정수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진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사랑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베풀어 주신 사랑입니다. 그 십
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있기에 오늘 우리들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죄악된 세상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그 사랑을 더욱 깊이 누리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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