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글

사랑의 편지 10월 8일

절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독교의 절기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로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세례 받으신 주현절, 고난받으신 사순절과 고난주간, 그리고 고난일, 부활절, 성령강림절(오순절, 맥추감사절), 그리고 추수감사절로 이어집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신앙의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행하신 크신 구원의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절기는 구원의 사건을 우리들에게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초막절의 현대적 표현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초막에서 거했지만 그들이 부족함이 없이 광야를 지났고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와서 그 땅의 곡식을 먹게 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과 공급하심 가운데 살아감을 의미하며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이 교회 가운데 임하심으로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 실현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은 모두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성령을 한 없이 마시는 것이며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기억하면 대부분이 곡식의 추수나 물질의 열매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에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추수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들이 먼저 떠올라야 합니다.

주님은 초막절의 주인이십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주님이 성령을 한 없이 부어주시는 분이시며 열매를 맺게 하시며 마지막 추수를 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절기는 곧 우리의 구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편지 10월 1일

우리의 감사에 관하여

오늘은 10월 첫 주일입니다. 성찬예식을 가집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10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를 먹고 마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영적임재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록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지만 거기에 주님은 영적으로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항상 주님이 나를 위해 몸 찢기시고 나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 사랑과 그 은혜가 지금도 헛되지 않고 여전히 나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정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 감사할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성찬은 기억입니다. 성찬은 감사입니다. 성찬은 나눔입니다. 떡을 떼어 나누어주시고 잔을 나누어 주신 것은 주님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피를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들도 이렇게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동일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지켜야 할 절기를 하나님께서 명하시면서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초막절은 그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초막에 거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추수를 마치고 난 후에 그들은 그들이 광야의 나그네였고 한 해를 살면서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총을 주셨기에 풍성한 결실을 하게 되었다는 감사입니다.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2017년 성찬식과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우리들은 기억하고 감사하며 나누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의 편지 9월 24일

감사로 드리는 예배

10월8일 주일은 2017년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광야를 인도하시고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물리치시고 적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의 소산과 열매를 먹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감사도 구체적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에 대해서 감사합시다. 그 분이 행하신 모든 일들로 인해서 감사합시다. 그러면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자비와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교만하고 목이 곧았던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감사는 이제 매우 희귀한 선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여전히 우리 삶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실 때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물을 저장하지 못한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의 공급자가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나 스스로 움켜쥐고서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감사는 내 손을 펴서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풍성한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2017년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참되고 감격이 넘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의 편지 9월 17일

문제와 그 해법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혹은 모든 병에는 약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나 병을 접근하는 방식이 잘못되거나 몰라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강대국들의 긴장이 팽팽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 대한민국도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끝까지 고집해서 모두가 피해를 보고 멸망할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을 찾아서 해결책을 구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은 요원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우리는 팽팽했던 긴장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로 인해서 완화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만나곤 합니다.

저는 신앙의 문제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더욱 선명하게 그 예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반대하고 극심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도 성도는 죽음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대변했을 때 그렇게 박해했던 당사자들이나 당국이 오히려 반대로 그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고 회심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에까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서 인간의 계획가 도모가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지를 잘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삶의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 엎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앞에 우리의 생각과 인간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매우 강하고 지혜로운 것 같지만 매우 약하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잘 증명하는 예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장 약했을 때, 길을 모르고 방황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길을 인도하시고 그들의 강함이 되어 주셨다는 것도 우리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 나타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기 보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교만하기 보다는 겸손함으로, 불의하기 보다는 정의로움으로, 다툼과 미움보다는 사랑과 화합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 천하 가운데 드러내실 것입니다.

사랑의 편지 9월 10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사람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체력과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지략과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위대함을 느낍니다. 지식이 뛰어나 사물의 이치를 발견하고 원리를 깨닫고 그것을 이용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인간의 힘과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연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인간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인간이 이룩한 모든 기술과 문명의 총합인 도시가 자연의 재해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땅을 흔드는 지진이나 바다에서 일어나는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강력한 바람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아이러니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가치와 능력은 너무나 소중하고 위대하지만 이 지구에는 70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나 한 사람은 너무나 작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너무나 큰 별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지구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 속에 먼지보다도 더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모순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나 연약한 모습을 가진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먼지와 같고 티끌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사의한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면 너무나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능력이나 가진 물질이나 지식으로 그 가치를 증명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가장 작은 모습이지만 빛과 소금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는 자들입니다. 마치 바다에 소금의 농도가 3%밖에 안 되지만 바다를 썩지 않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작지만 가장 큰 능력을 가진 자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 역설이 우리 안에 있음이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편지 3월 12일

대한민국의 헌정 역사는 참으로 얼룩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 그 다음 윤보선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모두 재임 기간 중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하야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죽거나 혹은 퇴임 후에 스스로 죽거나, 또 파면을 당했습니다.

또 임기를 마친 대통령도 하나같이 퇴임 후에 친인척비리나 혹은 비자금 등으로 수사를 받았고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되면 대한민국의 최고 통수권자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신을 감옥 속에 가두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보다 건강하고 상식과 정의가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되었습니다. 이 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균형있는 견제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아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강같이 하수같이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 재에 앉아 자복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회개하는 자리에 부흥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부흥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먼저 교회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남에게 회개를 촉구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티끌에 앉아서 함부로 내 뱉었던 모든 말들과 행동들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 Log In

    Time limit is exhausted. Please reload the CAPT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