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글

2019년 1월 20일 사랑의 편지

역사는 지나간 시간과 인간의 활동과 문화의 생활에 대한 기록이며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100% 객관적인 역사 기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시대로부터 2천년이 지난 시점에서 2천년 전의 사건과 이야기들을 글을 통해서 읽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시간의 간격은 많은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문화와 상황을 고려하고 문체를 이해하지 않고서 현재 우리들이 글을 읽는 방법과 현재의 문화 이해만으로는 성경의 사건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항상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면서 본문 즉, 기록된 텍스트와 그 당시의 문화 즉 컨텍스트, 그리고 오늘의 현재 상황 즉 현재의 컨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거기서 우리들에게 주는 말씀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경읽기만 잘해도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읽기는 곧 묵상이며 해석이며 적용이 됩니다. 자의적으로 읽기 시작하면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에서 읽기 시작하면 입체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너무 한 쪽으로 생각을 몰고가는 편향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매도하고 잘못된 생각으로 몰아버리는 경향이 짙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해석하시면서 그 본질을 꿰뚫어 보셨고 그리고 울법을 완전하게 해석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훈련이 정말 필요하고 그러한 읽기를 통해서 우리들은 더욱 더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말씀이 주는 기쁨과 은혜가 날마다 함께하는 성경읽기와 묵상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9년 1월 13일 사랑의 편지

새 일을 시작하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

스페인에 가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습니다. 약 800km의 길을 걸어서 가는 순례길입니다. 처음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는 험한 여정이 시작되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걸어본 사람들이 하는 말은 800km를 생각하고는 걸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오직 오늘 걸어야 하는 그 길만을 생각할 때 갈 수 있습니다. 그 하루 하루가 모여서 마침내 산티아고 800km의 순례길을 다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를 걷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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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순례길의 여정에 가장 중요합니다. 2019년 365일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일 년을 살아갈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벌써 보름정도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면 일년도 어느 듯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허송세월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도 하루, 저렇게도 하루가 지나갑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서 내일 걸으리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늘의 길을 오늘 걸어야 내일의 길을 내일 걸을 수 있습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참 소박하면서도 소중합니다.
그 하루가 모여서 결국에는 우리들의 삶을 만들게 됩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내 삶의 흔적이 됩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1920년생 올해로 만 99세, 한국 나이로 100세를 맞는 분입니다.
그 분이 97세에 쓴 책이 ‘백 세를 살아보니’라는 책입니다.
그리고 2018년 2월에 책을 또 내었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라는 책입니다.
결론은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루 하루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가장 복되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사느냐가 어떤 인간이 되느냐 이며, 어떤 문제를 해결지었는가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가와 통한다“고 했습니다.

하루 하루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2019년 1월 6일 사랑의 편지

신년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겠습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각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몸으로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항상 교회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주님께서 교회를 향하여 명령하시고 부탁하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5가지 핵심요소는 예배, 양육, 교제, 구제봉사, 전도선교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며 교회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2019년 한 해 동안에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제자로서,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봉사자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전도자로서 우리는 아름다운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준비하신 빛이며 소금입니다.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이민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므로 새 힘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소년과 장정이라도 피곤하며 넘어지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버나비열방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편지 12월 10일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기다림에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풍습에는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신부는 단장을 하고 신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 신부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기다려야 합니다. 등불을 계속해서 켜서 기다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름이 필요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신랑이 늦게 오게 되면 그 때 등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자는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는 기다림은 소용이 없습니다.

마태복음5장1-13절에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등불의 기름을 여분으로 더 준비했고 미련한 다섯처녀는 등불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일찍 오지 않고 더디 옴으로 기름이 더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기름을 더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준비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낭패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모릅니다.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않은 자가 구분이 안됩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자는 평소에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기를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총탄을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용사가 총을 가지지 않거나 총알이 없다면 그는 죽음 목숨이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자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치는 것은 요행을 바라거나 이미 포기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년 2월에는 평창올림픽이 열립니다. 참가하는 선수들은 몇 년 동안 땀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참가하는 누구도 그렇게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6장8절)

사랑의 편지 12월 3일

삶은 소망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은 태어난 아기의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집니다. 아름답고 지혜롭게 자라나서 부모가 사는 삶보다 훨씬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도 자라면서 지식을 배우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장래의 자신의 삶에 대한 꿈을 가지고 희망을 품고 성장하게 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꿈이 있어야 하고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희망을 저버렸고 어둠과 절망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삶은 번성하고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풀 수 없는 실타래가 엉키듯이 얽히고 설켜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대문명은 우리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기보다는 파괴와 절망이라는 어둠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환경문제와 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폐해들 그리고 인간을 대체할 인공지능이 가져올 또 다른 세상을 앞에 두고서 인간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대적하면서 만들어낸 핵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한계가 어디까지일까를 두고서도 인간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고 죽음에 대해서 궁구히 살펴도 인간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답은 절망입니다. 어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말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을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약속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 희망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약속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지금 우리는 소망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리 어둠고 절망적인 현실이 눈 앞에 펼쳐져도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구원의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계절은 주님을 소망하며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사랑의 편지 11월 26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13장14-15절)

아브람과 조카 롯이 함께 거할 수 없을 만큼 소유가 많아졌을 때에 둘은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 때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어디든지 네가 먼저 선택하면 나는 반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살펴보고 가장 좋은 땅은 골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롯이 본 땅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보여주신 땅은 시각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롯은 육신의 눈으로 땅을 보았고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땅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우리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면 롯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면 아브람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11장1-2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브리서11장8-10절)

성도는 보이는 세상을 보는 자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보이는 현실과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의 걸음을 옮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우리의 현실을 보면 교회를 보면 다음세대를 보며 고통당하는 영혼을 보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영혼들을 볼 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나의 지나온 걸음이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인지 아니면 아브람이 선택한 약속의 땅인지를 살펴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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