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글

사랑의 편지 12월 10일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기다림에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준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풍습에는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신부는 단장을 하고 신랑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 신부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등불을 들고 기다려야 합니다. 등불을 계속해서 켜서 기다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름이 필요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신랑이 늦게 오게 되면 그 때 등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다리는 자는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는 기다림은 소용이 없습니다.

마태복음5장1-13절에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등불의 기름을 여분으로 더 준비했고 미련한 다섯처녀는 등불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일찍 오지 않고 더디 옴으로 기름이 더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기름을 더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준비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낭패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모릅니다.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않은 자가 구분이 안됩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자는 평소에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기를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총탄을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전쟁에 나가는 용사가 총을 가지지 않거나 총알이 없다면 그는 죽음 목숨이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자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치는 것은 요행을 바라거나 이미 포기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년 2월에는 평창올림픽이 열립니다. 참가하는 선수들은 몇 년 동안 땀을 흘리며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참가하는 누구도 그렇게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6장8절)

사랑의 편지 12월 3일

삶은 소망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은 태어난 아기의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가집니다. 아름답고 지혜롭게 자라나서 부모가 사는 삶보다 훨씬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도 자라면서 지식을 배우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장래의 자신의 삶에 대한 꿈을 가지고 희망을 품고 성장하게 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꿈이 있어야 하고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희망을 저버렸고 어둠과 절망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삶은 번성하고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풀 수 없는 실타래가 엉키듯이 얽히고 설켜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대문명은 우리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기보다는 파괴와 절망이라는 어둠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환경문제와 기술의 발달이 가져오는 폐해들 그리고 인간을 대체할 인공지능이 가져올 또 다른 세상을 앞에 두고서 인간은 두려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대적하면서 만들어낸 핵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한계가 어디까지일까를 두고서도 인간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고 죽음에 대해서 궁구히 살펴도 인간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답은 절망입니다. 어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말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을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약속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 희망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약속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지금 우리는 소망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리 어둠고 절망적인 현실이 눈 앞에 펼쳐져도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구원의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계절은 주님을 소망하며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사랑의 편지 11월 26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13장14-15절)

아브람과 조카 롯이 함께 거할 수 없을 만큼 소유가 많아졌을 때에 둘은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 때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어디든지 네가 먼저 선택하면 나는 반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했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살펴보고 가장 좋은 땅은 골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롯이 본 땅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보여주신 땅은 시각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롯은 육신의 눈으로 땅을 보았고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땅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우리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면 롯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면 아브람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11장1-2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브리서11장8-10절)

성도는 보이는 세상을 보는 자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보이는 현실과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의 걸음을 옮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우리의 현실을 보면 교회를 보면 다음세대를 보며 고통당하는 영혼을 보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영혼들을 볼 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나의 지나온 걸음이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인지 아니면 아브람이 선택한 약속의 땅인지를 살펴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의 편지 11월 19일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이 아니라 몸이 가지는 치유의 힘 자체입니다. 약은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실제로 그것을 회복시키는 것은 몸입니다. 상처가 난 곳에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항생제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항생제가 상처 자체를 아물게 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세포가 생기고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은 몸의 기능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돈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마치 돈이 전부인 것처럼, 또 돈이 전부가 되는 것처럼 생활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위한 수단 혹은 도구가 될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과 삶의 의미와 존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삶 자체를 행복하게 하고 의미있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광야같이 거칠고 메마른 인생의 길에서 우리는 생수를 마시게 되고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혹은 수단을 목적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민의 삶이 빡빡하기 때문에 우리는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말처럼 잘못된 선택과 삶의 패턴을 가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삶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리고 삶의 목적 자체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에서 메마름과 배고픔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잊어버리고 내가 스스로 물 웅덩이를 판다고 해서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든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바울은 권면했습니다.

우리 삶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그 때부터는 악순환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인생은 복잡하고 대단히 어려운 것 같지만 때로는 너무나 단순하고 쉽습니다. 그 길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다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의 편지 11월 12일

10월24일에 저희 아버님 김상중목사님(대구영남교회원로목사)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10월30일에는 한국의 배우 김주혁씨(45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1월5일 주일예배를 드리던 미국 텍사스주 한 교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2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세 가지 종류의 죽음을 눈으로 또 귀로 듣고 경험하면서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시간을 살며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있는 반면에 전혀 생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했던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나 가슴 아프게 악한 행동에 희생이 되어서 죽는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죽음에 대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세 종류의 죽음을 보면서 결국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주어진 것이며 그것은 언제든지 내게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에만 삶을 살 수 있으며 그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들은 그 시간을 헛되고 헛된 것에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위하여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매일 매일은 똑같은 것 같지만 똑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허공에 메아리치는 소리처럼 공허할 때도 있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됩니다.

아버님의 장례일정을 통해서 저는 아버님의 일생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늘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과 그 가정이 얼마나 복된 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내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다시 한 번 더 기도드립니다. 저와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편지 10월 15일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1장3-4절)

지난 주간에 추수감사주일을 보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일년동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눈 쌓인 산에서 한인들이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산불로 비씨주가 온통 몸살을 앓았습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사상 유래없는 피해를 당했고 최근에는 라스베가스 총기사고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갈등은 점점 그 수위가 높아져 가고 있고 그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이래 저래 어려움을 당하며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떠나 교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땅에 내리는 재앙과 주변의 나라들을 통한 징계의 방망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바라보면서 평화와 안정을 구합니다. 회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내게로 돌아오면 회복과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현대의 과학문명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인간은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돌아갈 때만이 우리들의 삶에 평안과 회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 진리는 3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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