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목사의 사랑의편지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살면서 내가 원하지 않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려운 장애물을 만나듯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병을 앓게 되는가 하면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 두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오랫동안 애쓰고 노력했던 일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 속에 어려움을 만나 힘들어 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때로는 두려움과 힘겨움으로 찾아와서 나를 실망시키고 좌절시키게 되기도 합니다. 그 때 가만히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하고 찾게 됩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인간의 삶과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이것을 ‘도전과 믿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삶에 찾아오는 수 많은 위협적인 도전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기도 중에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기도할 제목을 주셨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두려워하고 염려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도해야 할문제라고믿게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그 과정이 바로 우리 앞에 찾아온 두려움과 어려움과 염려들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기도하고 계십니까? 지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위에 굳게 서 있습니까? 그렇다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정금 같은 믿음으로 연단하실 것입니다. 불 같은 시험이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더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오직 그의 은혜만을 구하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12장2절)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입니다. 이 세대로 표현된 단어는 이 세상의 시대 정신과 문화를 이야기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세상을 본받고 그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대변되는 세속화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기 때문에 큰 물줄기와 같아서 거스르기가 힘이 듭니다.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인간의 삶은 항상 다수가 가고자 하는 큰 흐름의 방향을 지극히 작은 소수가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방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포스트모던, 상대주의, 다원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절대 진리, 절대 방향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상대적 가치만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사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합니다. 그 마음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할 때만 가능합니다. 그 마음은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나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 마음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 당신 자신을 믿는 자들의 모임을 남겨놓으셨습니다. 그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그의 몸인 교회로 살아간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됩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지만 교회만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과 교통과 하나됨을 드러내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 교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공동체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대 교회는 개인주의적 집단(?)이 된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목사로서 목양을 담당하면서 가장 큰 딜레마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가장 어려운 난제(?)로 다가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의 방식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될 때 그 모습은 곧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교통과 연합의 하나됨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연합과 교통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우주적 보편교회와 현실 교회사이의 긴장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교회는 완전하지만 현실의 교회에서는 아직 불완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원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서 현재를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연약하지만 현실의 삶 속에서 교회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한 형제요 자매로 사랑합니다.

교회-그리스도안에서의 신비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비입니다. 어떻게 그의 몸이 되는지? 그리고 그의 몸이 된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인지? 참으로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부르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선언적 차원에서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므로 가장 거룩하고 공의롭고 사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차원에서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늘 전투적인 싸움이 있는 자리입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며 우리의 육신에 속한 정과 욕심이 가져오는 긴장과 갈등 앞에서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참 역설적입니다.

저는 여기에 교회가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를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그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아야 하는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그의 몸이 죄에 대하여 죽을 때 교회로 부름 받은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날 때 교회도 그 안에서 다시 산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현실의 교회 속에서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6장9-10절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교회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그의 몸이 된 거룩한 공교회를….

2013-04-03 14.30.48

나는 주님의 기쁨입니다.

 

벚꽃이 참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동네 동네 마다 벚꽃이 너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벚꽃은 오직 봄에만 핍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만 우리들이 볼 수 있습니다. 불과 1-2주일입니다. 그리고는 꽃은 떨어지고 새 잎이 돋아납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일년 내내 기다린 보람이 있듯이 벚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더욱 귀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피어 있다면 그 아름다움의 느낌이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꽃을 보는 감각도 무뎌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 활짝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벚꽃은 일년에 딱 1-2주일 정도 피었다가 집니다. 어떻게 보면 참 허무합니다. 그렇게 피었다가 질 것 같으면 피지를 말 것을 왜 그렇게 짧게 피었다가 저버리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인생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도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합니다. 어차피 질 꽃이라면 왜 필까?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왜 태어날까? 과연 짧게 피었다가 지는 것이 허무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꽃은 떨어짐으로 새 잎을 돋게 합니다. 꽃의 모습과 잎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꽃의 모양이나 잎의 모양이 다 한 나무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꽃과 같고 안개와 같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새롭게 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벚꽃이 아름답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벚꽃을 보면서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그 지으신 만물을 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봄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그 놀라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이 찬양이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부활의 주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을 그들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은 믿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 해도 나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거의 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의심하고 믿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정말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활을 믿으십니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복음11장25-26절)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동일합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발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을 향해서는 ‘누구를 찾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 속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육체로 죽으셨다가 다시 육체로 살아나셨습니다. 썩을 육체로 심었지만(죽었지만) 썩지 않은 몸(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온 세상을 묶고 있었던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승리입니다. 죄의 값으로 정해진 사망에게 그 값을 완전히 지불하고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승리이며 완성이며 대속(대신 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사망이 우리 가운데 더 이상 왕노릇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가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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