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목사의 사랑의편지

2013-04-03 14.30.48

나는 주님의 기쁨입니다.

 

벚꽃이 참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동네 동네 마다 벚꽃이 너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벚꽃은 오직 봄에만 핍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만 우리들이 볼 수 있습니다. 불과 1-2주일입니다. 그리고는 꽃은 떨어지고 새 잎이 돋아납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일년 내내 기다린 보람이 있듯이 벚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더욱 귀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피어 있다면 그 아름다움의 느낌이 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꽃을 보는 감각도 무뎌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짧은 시간 활짝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벚꽃은 일년에 딱 1-2주일 정도 피었다가 집니다. 어떻게 보면 참 허무합니다. 그렇게 피었다가 질 것 같으면 피지를 말 것을 왜 그렇게 짧게 피었다가 저버리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인생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도 아주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합니다. 어차피 질 꽃이라면 왜 필까?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왜 태어날까? 과연 짧게 피었다가 지는 것이 허무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꽃은 떨어짐으로 새 잎을 돋게 합니다. 꽃의 모습과 잎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꽃의 모양이나 잎의 모양이 다 한 나무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꽃과 같고 안개와 같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새롭게 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벚꽃이 아름답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벚꽃을 보면서 기뻐하듯이 하나님은 그 지으신 만물을 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봄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그 놀라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이 찬양이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부활의 주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을 그들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날 것은 믿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 해도 나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거의 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의심하고 믿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정말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부활을 믿으십니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한복음11장25-26절)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동일합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발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을 향해서는 ‘누구를 찾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 속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육체로 죽으셨다가 다시 육체로 살아나셨습니다. 썩을 육체로 심었지만(죽었지만) 썩지 않은 몸(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온 세상을 묶고 있었던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승리입니다. 죄의 값으로 정해진 사망에게 그 값을 완전히 지불하고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승리이며 완성이며 대속(대신 값을 주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사망이 우리 가운데 더 이상 왕노릇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가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 이기고 승리하셨습니다.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나는 몰랐습니다.

어릴 때는 잘 몰랐습니다.

철이 들면서도 잘 몰랐습니다.

세례받고 입교를 한 후에도 잘 몰랐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공부 할 때에도 잘 몰랐습니다.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길 때에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 주님이 부르실 그 때까지 다 깨닫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현대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우리들의 감각이 이제는 화인 맞은 양심같이 무뎌져 있습니다.

회개할 줄도 모르고 어둠을 드러내고 빛 가운데로 나갈 자정의 능력도 없는 것 같습니다.

 

복음을 우리는 잘못 깨닫고 있나 봅니다.

복음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인데 그 말의 의미를 내가 기뻐하는 소식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하나님이 기뻐하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나의 정과 욕심을 못박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담대하게 고백해야 하는데 여전히 그리스도는 죽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그리스도는 슬퍼하십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주님이 기뻐하시는데…

 

그렇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복음의 의미를 깨닫도록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육신의 소욕을 죽이십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입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를 물어야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주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주님이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이 되십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들은 이 두 가지를 함께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 즉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크신 구원의 은혜를 우리는 깊이 감사하며 그 은혜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갚을 수도 갚을 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았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아니 이 은혜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주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을 걸으면서 우리 또한 주님의 형상을 덧입은 자로서, 주님을 우리 자신의 모범으로 삼아서 따라가야 하는 제자입니다.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주님 그 일이 주님에게 있어서는 안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앞서서 가시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주님은 우리를 대속하시는 분이시면서 우리들의 온전한 모범이 되십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적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넓은 길로, 넓은 문으로 가지 말라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는 주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 사랑의 놀라운 역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되시고,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을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사순절입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의 영광을 묵상하며 보내는 시간입니다. 부활주일 전날까지 주일을 뺀 40일을 사순절로 지킵니다. 그래서 항상 그 시작은 수요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첫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부릅니다.

 

사순절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과 죄의 비참함,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며 주님의 구원을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고난의 영성이 우리 속에 잘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에는 금식과 기도 그리고 구제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음식과 시간 그리고 물질(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다시 깨닫고 배우며 실천하는 시간이 됩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삶을 절제하게 하며, 고난의 영성으로 이끌며, 나눔과 섬김 그리고 희생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원하는 선을 행치 않으며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고 있는 죄인인 나 자신을 향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소망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2013년 사순절도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고난의 길과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을 깊이 돌아보며 십자가에 나의 옛 자아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산 자로 서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잃어 버리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130217)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에 비추어 보더라도 나는 죄인입니다. 내 안에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할까를 날마다 외치며 절규합니다.

 

정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아니라면 나는 저 벌레만도 못한 찌꺼기 같은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다른 이들을 향한 정죄는 너무나 잘하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힐 생각은 하지 않고 어둡다고만 남탓을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썩었다고 말은 하지만 부패를 방지하고자 소금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주님은 벌써 나를 향하여 ‘너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나 봅니다. 복음 때문에 기뻐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갈망이 더욱 더 간절히 타올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태하고 게으른 자신을 보면서 한없이 자책만 해봅니다.

 

나는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구속의 은혜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말은 하면서 그 은혜를 누리며 그 은혜에 붙들려 살지는 못하는 바보 같은 인생입니다. 세상에도 한 다리를 걸치고 주님께도 한 다리를 걸치고 양다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거북하고 힘들지도 않나 봅니다. 이거야 말로 진짜 바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 세상에서는 바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도 조금, 그렇다고 주님을 버리지는 못하고 주님께도 조금,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이 주님이 책망하셨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나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나를 바보라고 말해야 나는 주님께 대하여 지혜로운 자가 될텐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정말 바보입니다.

 

내가 나를 바보라고 말하지 말고 세상이 나를 바보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0224)

  • Log In

    Time limit is exhausted. Please reload the CAPT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