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목사의 사랑의편지

사랑의 편지 11월 12일

10월24일에 저희 아버님 김상중목사님(대구영남교회원로목사)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10월30일에는 한국의 배우 김주혁씨(45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1월5일 주일예배를 드리던 미국 텍사스주 한 교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2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세 가지 종류의 죽음을 눈으로 또 귀로 듣고 경험하면서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시간을 살며 부족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있는 반면에 전혀 생각하지도 준비하지도 못했던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나 가슴 아프게 악한 행동에 희생이 되어서 죽는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죽음에 대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세 종류의 죽음을 보면서 결국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주어진 것이며 그것은 언제든지 내게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에만 삶을 살 수 있으며 그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들은 그 시간을 헛되고 헛된 것에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위하여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매일 매일은 똑같은 것 같지만 똑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가 허공에 메아리치는 소리처럼 공허할 때도 있지만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됩니다.

아버님의 장례일정을 통해서 저는 아버님의 일생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늘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과 연약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과 그 가정이 얼마나 복된 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내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다시 한 번 더 기도드립니다. 저와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편지 10월 15일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1장3-4절)

지난 주간에 추수감사주일을 보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일년동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눈 쌓인 산에서 한인들이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산불로 비씨주가 온통 몸살을 앓았습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사상 유래없는 피해를 당했고 최근에는 라스베가스 총기사고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갈등은 점점 그 수위가 높아져 가고 있고 그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이래 저래 어려움을 당하며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떠나 교만한 삶을 살아가게 될 때 땅에 내리는 재앙과 주변의 나라들을 통한 징계의 방망이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서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바라보면서 평화와 안정을 구합니다. 회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내게로 돌아오면 회복과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현대의 과학문명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인간은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돌아갈 때만이 우리들의 삶에 평안과 회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 진리는 3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사랑의 편지 10월 8일

절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의미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기독교의 절기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로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세례 받으신 주현절, 고난받으신 사순절과 고난주간, 그리고 고난일, 부활절, 성령강림절(오순절, 맥추감사절), 그리고 추수감사절로 이어집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신앙의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행하신 크신 구원의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함입니다. 절기는 구원의 사건을 우리들에게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초막절의 현대적 표현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초막에서 거했지만 그들이 부족함이 없이 광야를 지났고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와서 그 땅의 곡식을 먹게 된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과 공급하심 가운데 살아감을 의미하며 광야같은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이 교회 가운데 임하심으로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 실현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믿는 자들은 모두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을 지키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성령을 한 없이 마시는 것이며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추수감사절을 기억하면 대부분이 곡식의 추수나 물질의 열매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에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추수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들이 먼저 떠올라야 합니다.

주님은 초막절의 주인이십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주님이 성령을 한 없이 부어주시는 분이시며 열매를 맺게 하시며 마지막 추수를 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절기는 곧 우리의 구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편지 10월 1일

우리의 감사에 관하여

오늘은 10월 첫 주일입니다. 성찬예식을 가집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10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를 먹고 마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영적임재하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록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지만 거기에 주님은 영적으로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항상 주님이 나를 위해 몸 찢기시고 나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그 사랑과 그 은혜가 지금도 헛되지 않고 여전히 나에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정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 감사할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성찬은 기억입니다. 성찬은 감사입니다. 성찬은 나눔입니다. 떡을 떼어 나누어주시고 잔을 나누어 주신 것은 주님이 자신의 몸을, 자신의 피를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들도 이렇게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동일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지켜야 할 절기를 하나님께서 명하시면서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초막절은 그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초막에 거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추수를 마치고 난 후에 그들은 그들이 광야의 나그네였고 한 해를 살면서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총을 주셨기에 풍성한 결실을 하게 되었다는 감사입니다. 기억하고 감사하고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2017년 성찬식과 추수감사절을 통해서 우리들은 기억하고 감사하며 나누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의 편지 9월 24일

감사로 드리는 예배

10월8일 주일은 2017년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광야를 인도하시고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물리치시고 적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의 소산과 열매를 먹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감사도 구체적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에 대해서 감사합시다. 그 분이 행하신 모든 일들로 인해서 감사합시다. 그러면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자비와 인자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교만하고 목이 곧았던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감사는 이제 매우 희귀한 선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여전히 우리 삶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실 때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물을 저장하지 못한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가 없는 삶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의 공급자가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나 스스로 움켜쥐고서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감사는 내 손을 펴서 하나님 앞에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풍성한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2017년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참되고 감격이 넘치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사랑의 편지 9월 17일

문제와 그 해법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혹은 모든 병에는 약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나 병을 접근하는 방식이 잘못되거나 몰라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강대국들의 긴장이 팽팽합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당사자인 우리 대한민국도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잘못된 방법으로 끝까지 고집해서 모두가 피해를 보고 멸망할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근본원인을 찾아서 해결책을 구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은 요원합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우리는 팽팽했던 긴장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로 인해서 완화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만나곤 합니다.

저는 신앙의 문제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더욱 선명하게 그 예들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반대하고 극심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도 성도는 죽음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대변했을 때 그렇게 박해했던 당사자들이나 당국이 오히려 반대로 그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고 회심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는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에까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해서 인간의 계획가 도모가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지를 잘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삶의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 엎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앞에 우리의 생각과 인간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매우 강하고 지혜로운 것 같지만 매우 약하고 어리석었다는 것을 잘 증명하는 예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장 약했을 때, 길을 모르고 방황했을 때 하나님은 그 길을 인도하시고 그들의 강함이 되어 주셨다는 것도 우리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 나타난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기 보다는 믿음을 가지고서, 교만하기 보다는 겸손함으로, 불의하기 보다는 정의로움으로, 다툼과 미움보다는 사랑과 화합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 천하 가운데 드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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